진화론자+무신론자들에게 던지는 핵폭탄: 진화론과 무신론은 합리적으로 양립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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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이야기 하자면, 이 글에서 소개할 알빈 플란팅가 (Alvin Plantinga) 교수의 주장은 “진화론과 자연주의(Naturalism)는 양립 불가능하다” 이다. 자연주의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분들을 위해 일단 “무신론” 이라는 더 보편적인 단어로 낚았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 계속 살펴보겠지만 오늘날 무신론 = 자연주의 이라는 공식이 어느 정도는 성립한다고 보기 때문에 아주 몹쓸 사기를 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연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물리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일에 있어서 초자연적인 존재나 힘의 개입을 거부하는 입장을 일컫는 자연주의는 극단적인 무신론의 한 형태이다. 이론적으로 모든 자연주의자는 무신론자이여야 하지만 모든 무신론자가 자연주의자일 필요는 없다. 초자연적인 신의 존재는 부정하지만, 플라톤의 ‘선’ 개념과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그는 무신론자이지만 자연주의자는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오늘날 무신론자들은 거의 대부분 자연주의의 옷을 입고 있다. 특히 물질세계는 물질로 설명되어져야 한다는 유물론적인 전제 아래 이루어지는 과학적 방법론만이 진리를 탐구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식의 주장과 함께 과학이 초자연적인 존재의 부재를 증명한다는 강한 확신에 찬 무신 진영의 과학자들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진화론을 연구하는 생물학, 신경과학 등의 학문 분야의 최전선에 있는 과학자들은 진화론은 이론 이상을 넘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고, 진화론을 부정하지 않는 이상, 무신론으로의 귀결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한다.

과연 그런까? 20세기의 아퀴나스로 평가받으며 기독교 철학의 대부로 알려진 노틀담 대학의 알빈 플란팅가 교수가 과학을 등에 업고 기세등등하던 자연주의자들의 놀이터에 핵폭탄을 투하한다. 그는 오히려 자연주의와 진화론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증명해 보이며 진화론을 이용하여 기독교를 공격하는 수많은 자연주의자들을 초토화 시켜버림으로써 종교철학사에 한 획을 긋는 큼지막한 업적을 남긴다. Evolutionary Argument Against Naturalism (EAAN) 으로 불리는 이 논증은 찰스 다윈이 자신의 진화론이 빠져있는 모순에 대한 고민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인간의 마음이 가장 하등한 동물에서 발전돼 나온 것이라면 그 마음에서 나온 대단한 결론들을 신뢰할 수 있을까? ” (다윈 자서전, 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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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자들에게 인간은 그저 유물론적인 해석을 통해서만 설명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진화론을 수용하는 자연주의자라면 인간이 행하는 모든 행동들을 신경체계 안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작용에 대한 결과이며. 이런 신경체계의 작용은 주변환경 등에 적응을 하면서 생존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진화하게 된다고 믿어야 한다.

문제는 자연주의적인 혹은 유물론적인 접근을 취하는 이상 인간의 신념(Belief)도 행동과 똑같이 신경체계의 화학적 작용으로 일어난다고 설명해야한다. 하지만 그들의 신념의 참/거짓 여부는 그들의 생존과 연관이 없다. 그렇다면 자연주의와 진화론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인지 능력이 믿을만하다고 할 수 있는 확률이 낮다. 생존이 궁극적인 목적이라면, 인간의 신념이 참을 향해 나가는 방향으로 우리의 인지 능력이 진화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인간의 인지능력이 신뢰할 만하다는 전제를 포기해야할 충분한 근거가 생긴다. 이 상황까지 오게 되면, 그들은 결정적인 문제에 부딪히고 만다. 신뢰할 수 없는 인간의 인지능력으로 얻어진 모든 믿음들 또한 신뢰할 이유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자연주의와 진화론이 둘 다 참이라는 믿음또한 신뢰할 수 없게 만든다.  결국 자연주의와 진화론은 자기반박적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었으므로 이 두가지는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된다. “인간은 진화했으므로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라는 식의 주장이야말로 결국 지적자살인 것이다.  인간의 인지능력을 신뢰할 수 없고, 그 신뢰할 수 없는 인지능력을 통해 얻어진 모든 지식과 믿음을들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은 결국 인간을 허무주의의 늪으로 향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적어도 허무주의의 길에 들어선 진화론+자연주의자는 자신의 사상에 있어서 일관성이 있는 것이리라. 플란팅가는 자연주의와 진화론의 충돌을 이렇게 설명한 후에 더 나아가서 유신론과 진화론은 합리적으로 양립 가능함 또한 설명하지만 이 글에서는 이 부분을 다루지 않도록 하겠다. 플란팅가는 또한 많은 유신론자들이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의 합리성을 보이기 위해 신의 존재 증명에 급급해 하고 있을 때, 왜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의 합리성이 신의 존재의 증명을 필요로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신의 존재의 증명이 없이도 신에 대한 믿음 그 자체가 합리적이라는 논증을 펼쳐 역사에 길이 남을 철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플란팅가의 논증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래를 참조:

한글 논문

동영상:

14 thoughts on “진화론자+무신론자들에게 던지는 핵폭탄: 진화론과 무신론은 합리적으로 양립 불가능.

  1. Pingback: John Lennox의 2012 베리타스 강연: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은 비이성적인가?’ | Scientia Christi

  2. 몇가지 오류를 범하신것 같아 적어봅니다.

    1. 진화에는 목적성/방향성이 없습니다.
    진화는 항상 생존에 적합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공작새 입니다. 수컷 공작새는 화려한 깃털을 가짐으로써 암컷 공작새에게 구애활동에 유리한 형질을 가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화려한 깃털을 가지는 방향으로 진화되었죠. 하지만 이 화려한 깃털은 움직임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포식자의 눈에 띄기 쉽게 되는 등 생존에는 여러모로 불리합니다.
    따라서 진화론에서 진화는 생존을 적합하게 하기 위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것이며 신념의 참/거짓여부는 생존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자연주의와 진화론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은 가정이 틀렸으므로 성립할 수 없습니다.

    2. 생존에 유리하게 진화한 것도 결함은 있을 수 있습니다.
    진화론은 생명체가 항상 최상의 조건으로 발달한다는 가정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의 예가 인간의 식도입니다. 동물의 기도는 식도보다 앞에 있고 인간은 그 간격이 다른 동물들보다 좁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결함은 음식물을 급하게 먹다가 음식물이 기도로 들어가 질식사하는 일을 일으키곤 합니다. 기도가 식도보다 뒤에 있고 그 간격이 더 넓더라면 이러한 일이 일어날 확률은 줄어들 테지만 진화론에 의하면 기도가 식도보다 더 늦게 발달했고 인간의 경우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성대를 발달시키기 위해 둘의 간격이 좁아졌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성도 마찬가지로 진화론적으로 후세를 남기기에 유리하기 때문에 발달했지만 그 발달이 완전히 끝났다고도 말할 수 없고 결함이 전혀 없을거라 말할 수도 없습니다. 무신론자인 제가 보기에 결함이라 말할 수 있는 종교도 얼마든지 이성 안에서 생겨날 수 있고 생겨나 왔습니다.

    3. 과학은 이성이 완전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과학은 이미 정립된 이론에 종교적인 신념을 (어느정도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미 확고한 이론이라도 그에 반하는 증거가 발견이 되면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는 것이 과학이며 과학사 전반에 걸쳐 여러번 일어났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인간의 인지능력은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역시 말씀하신대로 인지능력을 통해 얻어진 모든 지식과 믿음도 완전히 신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과학자들은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계속 연구를 하며 인류의 지식을 조금 더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차츰 바꾸어나갑니다. 과학은 종교적 신념과 달리 역동적이며 변화무쌍합니다.

    • 좋은 코멘트들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에도 제 블로그에 있는 글들에 여러 무신론자들께서 댓글을 남겨주셨지만 어떻게 하나같이 그렇게 무례하고 기본적인 예의도 내용도 논리도 지식도 없이 비하성 발언만 하는지…. 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 무시하고 있었으나 님께서는 기본적인 에티켓을 지키실 줄 아는 보기드문 무신론자라는 생각이 들어 답변을 드립니다.

      1. “진화에는 목적성/방향성이 없다”에 관하여…
      님께서 “진화에는 목적성/방향성이 없다”라는 말을 잘못이해하셨거나 혼동하고 계신듯 합니다. 앨빈 플란팅가같은 철학자가 그렇게 허술한 방식으로 신다윈주의 진화론을 공격했을리가 있겠습니까. 진화에 목적성/방향성이 없다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목적성/방향성이 없다는 말이 생존과 관계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늘날 주류 생물학계의 패러다임인 신다윈주의 진화론의 두 기둥은 무작위적인 변이와 자연선택입니다. 무작위적인 변이는 말그대로 방향성과 목적성이 없이 무작위적으로 일어나지만 그런 변이들 중에서 생존에 적합한 것들만 자연선택의 과정을 통하여 걸러집니다. 목적성/방향성이 없다는 말은 우주의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되돌려서 새로 시작했을 때 현재 우리가 보고있는 세상의 모습과 같은 생명체들이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지 생존에 적합하게 나가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님께서 무작위적인 변이와 자연선택의 개념을 포함하는 신다위주의 진화론에 목적성/방향성이 없다라고 말씀하시고 싶으시다면 님은 이미 주류과학을 포기하신 것입니다.

      진화는 항상 생존에 적합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주장을 뒷받침하시기 위하여 아직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는 수컷 공작새를 예를 드시는 무리수를 두셨습니다. 수컷 공작새는 화려한 깃털 때문에 포식자의 눈에 쉽게 띄기도 하지만 수컷공작새의 깃털을 훼손시키자 암컷 공작새에게 외면을 받았다는 연구결과도 있지요. 쓸데없이 화려한 깃털때문에 포식자의 눈에 띄는 모습을 하여 높아지는 죽을 확률보다 그 깃털 덕분에 번식성공률이 더 높아진다면 생존에 더 적합한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 맞겠지요. 저도 어느쪽이 맞다고 단정지어서 말씀드리지는 않겠으나 공작새 깃털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진화론적인 해석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아셨으면 합니다.

      이건 좀 다른 얘기이지만 사실 제 생각엔 진화론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어떤 현상에 대하여 추측성 해석만 난무하다는 것입니다. 진화론은 너무 신촉성이 뛰어나서 서로 상충되는 현상들 조차도 무리없이 설명한다는 것이죠. 가령 왜 90 먹은 노인을 구하러 젊은 사람이 불길에 뛰어들어가느냐를 물으면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일원을 구하여 집단 생존력을 높이려는 성향이 진화의 과정속에 유전자 코드에 씌여졌다고 하고, 왜 또 다른 젊은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느냐 그러면 90먹은 사람보다는 젊은사람이 생존하는 것이 집단의 생존에 훨씬 유리하다는 식으로 설명을 하지요. 어떤 현상과 더불어 그 반대현상도 무리없이 설명하는 이론은 사실상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셈이지요.

      따라서 “진화론에서 진화는 생존을 적합하게 하기 위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것이며 신념의 참/거짓여부는 생존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자연주의와 진화론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은 가정이 틀렸으므로 성립할 수 없습니다” 라는 님의 말씀은 별로 어렵지 않게 반박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님의 주장은 목적성/방향성에 대한 님의 오해에서 비롯된 듯하고 그것은 주류패러다임인 신다윈주의 진화론을 벗어나는 듯합니다.

      2. “생존에 유리하게 진화한 것도 결함은 있을 수 있습니다”에 관하여…
      저는 제 글에서 “생존에 유리하게 진화한 것이 결함이 있을 수 없다”라고 말한적이 없습니다. “진화론이 생명체가 항상 최상의 조건으로 발달한다고 가정한다”는 말도 한적이 없습니다. “인간의 이성의 발달이 끝났다고 말한 적도 없고 결함이 전혀 없어야한다”라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종교”라는 단어는 “종교철학사”를 언급할 때 단 한번 사용했을 뿐 종교에 대한 그 어떤 주장도 하지 않았습니다. 종교가 이성적인지 비이성적인지 결함인지 아닌지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제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주의와 진화론에 관한 글입니다.

      제가 어디서 무슨 오류를 범한 것인지요? 님께서 인터넷에서 다른 글 읽고 혼동하신 것은 아니신지요?

      3. “과학은 이성이 완전하다고 보지 않는다” 에 대하여
      제가 2번에 대한 답변에서 했던 것을 또 반복해야겠습니다. 저는 “과학은 이성이 완전하다고 본다”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제 글은 그런 뉘앙스도 풍기지 않습니다. 무엇이 오해라는 것인지요? “과학이 종교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적도 없습니다. 그랬다면 그게 과학이겠습니까.

      님께서는 또 한번 헛다리를 짚으신 것 같습니다. 앨빈 플란팅가와 또 제가 공격하는 것은 신다윈주의 진화론이지 과학 자체가 아닙니다. 주류과학이론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신다윈주의 진화론, 또 그것과 뗄래야 뗄 수없는 자연주의 철학이 가지고 있는 자체적인 모순을 지적하고 논리적으로 이 둘은 양립불가능하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엄밀히 저는 인간의 인지능력이 신뢰할만한 것이 못된다라는 말도 한적이 없습니다. 신다윈주의 진화론과 자연주의를 가정했을 때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결론이 인간의 인지능력이 신뢰할만한 것이 못된다는 말 밖에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 신뢰할 수 없는 인지능력으로 만들어내고 가정한 신다윈주의 진화론과 자연주의 또한 신뢰할 수 없는 것이 되므로 자체모순을 품고있다는 주장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무슨 과학자체를 공격한 것 마냥 과학은 종교적인 신념을 가지지 않았다는 둥 과학자들은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계속 연구를 하며 인류의 지식을 더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나가며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하다는 둥 완전 딴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종교얘기는 한적도 없는데 계속 종교와 비교하시는 것도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앨빈플란팅가같은 사람이 신다윈주의 진화론과 자연주의의 자체모순을 파해침으로 인하여 신다윈주의 진화론이 붕괴되고 대체 이론이 나타남으로써 과학이 진보할 수도 있겠지요. 실제로 James Shapiro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이미 신다윈주의 진화론의 한계를 직시하고 이미 대체 이론을 찾기 시작했지요.

    • 기본적으로 원래의 논변을 좀 제대로 이해하실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님이 말한 포인트는 플란팅가의 주장과 사실상 관련이 없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하기가 힘드네요.

      플란팅가의 요지는, 만약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이론적 판단력(=참 거짓에 대한 판단력)을 신뢰할 이유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진화론에 대한 우리의 판단력도 신뢰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진화론자는 진화론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신뢰할 이유가 사라진다는 것이고, 자가당착이라는 것입니다.

      • 진화론이 사실이 아니라해도 우리의 판단력을 신뢰할 이유는 없죠. 판단력이 신뢰할만 했다면, 전문가들 사이의 이론 충돌이 없었을테니까요. 진화를 통해 만들어진 뇌라면 완전해야한다. 그런데 뇌는 완전하지 못하다. 따라서 진화를 통해 만들어진 뇌가 아니다. 이런 논증인거 같은데, 일단 이 논증이 명제가 아니라서… 형식적으로는 증명가능한 성질의 것이 아니죠. 우리가 무신론 유신론을 진화론 설계론을 논할때는 그럴 가능성이 더 충분하다라는 증명까지 가지못하는 썰을 푸는 건데, 저 교수는 그냥 썰푸는걸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라는 원론적인 얘기를 하면서, 그 타깃을 무신론자이며 진화론자인 사람들로만 한정하고 있는거 같네요

      • 님의 댓글이 매우 당황스럽습니다. 이 글을 전혀 이해하시지 못하신 것 같으니 다시 잘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진화를 통해 만들어진 뇌라면 완전해야한다. 그런데 뇌는 완전하지 못하다. 따라서 진화를 통해 만들어진 뇌가 아니다. 이런 논증인거 같은데..”

        죄송하지만 전혀 그런 논증 아닙니다. 진화론과 자연주의는 같이 받아들이는 입장은 자체모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개가 함께 합리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는 논증입니다. 이 논증은 진화론이 참인지 것인지, 자연주의가 참인지 거짓인지에 대한 주장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 두개가 같이 가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 있다는 말을 할뿐입니다. 이 논증자체를 이해하시지 못하고 쓰신 비판에는 더 이상 뭐라고 해드릴 말이 없네요…

        “진화론이 사실이 아니라해도 우리의 판단력을 신뢰할 이유는 없죠…”

        다시 반복하지만 이 글은은 진화론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 논증도 아니고 진화론이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판단려을 신뢰할 수 있다라는 논증도 아닙니다. 또한 이 논증은 진화론이 참이라면 님의 판단력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는 것이지, 진화론이 참이 아닐 경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헛다리 짚으신 듯합니다.

  3.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정말 뛰어나고 쉽게 반박하기 어려운 논증이네요. 저는 신다윈주의니 자연주의니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이해한 게 맞는지 한번만 봐주시겠나요? 1. 전제. 모든 것이 생존을 위해 진화했다면 인식 능력은 참/거짓을 보증하지 못할 수 있다. 2. 인식 능력이 참/거짓을 보증하지 못한다면 무신론에 대한 판단 또한 보증받기 어렵다. 3. 결론. 따라서 모든 것이 생존을 위해 진화했다면 무신론을 옹호하는 판단은 보증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진화론과 무신론은 양립 불가능하다는 말로 들립니다. 그런데 인식 능력이 참/거짓을 보증하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것이 오히려 더 생존에 적합하다면 이 논증은 성립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안녕하세요.
      네, 이 논증을 제대로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인식능력이 참/거짓을 보증하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것이 오히려 더 생존에 적합하다면 이 논증은 성립하지 않는 것 같다”라는 님의 말씀은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 전제를 증명하시기는 매우 어려울 듯 합니다. 주류 신다윈주의 진화론에서도 그런 전제는 하지 않습니다. 참이 되었든 거짓이 되었든 상관없이 생존에 가장 적합한 조건만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인식능력이 많은 경우 참/거짓을 보증하고 그것이 또 생존에 적합하기도 하지요. 가령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죽는다”라는 우리의 인식은 인간이 경험을 통해 얻은 보편적인 지식이고 또 참이지요. 그리고 이 지식 덕분에 우리는 절벽에서 뛰어내리지 않음으로써 생존률을 높이지요. 문제는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거짓인 지식을 습득할 수도 있는데 그 거짓지식이 오히려 인간의 생존률을 높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지구가 평평하고 서쪽끝에 다다르면 지옥으로 떨어진다”라는 거짓 지식 때문에 대서양 멀리 목숨을 걸고 항해하지 않았던 수많은 탐험가들은 자신들의 생존률을 높였다고 생각할 수 있겠군요. 또 어느 집에 불이 났는데 그 불난 집에 사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에 아무도 없다는 거짓 지식을 가졌던 사람은 불난 집에 뛰어들지 않아도 됨으로써 생존률을 높일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심지어는 불난 집에 도움이 필요한 노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뛰어들어가기가 두려워 더이상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본능적으로 머리속에 떠올리며 그 노인을 구하려 집에 뛰어들지 않는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도 어쨋든 자신의 거짓생각/거짓지식 덕분에 자기자신의 생존률을 높일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자연주의 혹은 무신론에 대한 믿음도 이렇지 않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연주의 자체가 모든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일에 있어서 초자연적인 존재의 개입없이 설명되어져야 한다는 전제가 바탕이 되는데, 생존자체가 자연주의적 진화론의 궁극적인 목표라면 이 전제가 어떻게 참임을 확신할 수 있느냐가 쟁점입니다. 플란팅가의 결론은 이런 문제들 때문에 “자연주의 혹은 무신론이 거짓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결론은 이런 문제들 때문에 “자연주의 혹은 무신론이 함께 양립하려면 그 사이에 필연적으로 모순이 생기기에 양립 불가능하다”라는 것입니다.

      님의 질문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 제가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해주시니 기분이 좋네요~. 감사해요. 자연주의가 검색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객관적인 경험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그러한 인식만 참이라고 말하는 것 같네요. 그리고 그러한 인식체계에서 참/거짓을 바람직하게 판단하는 것이 반드시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보증하지 못하고요. 하지만 이게 생존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자연주의와 신다윈주의가 필연적인 모순일 수도 있고 양립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이렇게 되면 언어적 정의에 따라 인식체계가 달라지는 것을 인정하게됨으로 자연주의를 논박하게 되고 과연 쉽게 논박할 수가 없네요. 덕분에 생각을 많이 해보고 갑니다.

  4. 안녕하세요… 플란팅가 교수님의 한국어 논문 보고싶은데 클릭하니 파일이 없다고 나오네요.^^

  5. 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정곡을 제대로 찔린 극단적인 무신론 신봉자들이 논리도 지식도 없느 이상한 댓글 달고 가는거 상대하느라 고생하시네요.

  6. 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정곡을 제대로 찔린 극단적인 무신론 신봉자들이 논리도 지식도 없는 이상한 댓글 달고 가는거 상대하느라 고생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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