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누가 예수를 종교라 하는가
저자: 조쉬 맥도웰 & 션 맥도웰
평점: 4/5
– 간략한 소개 –
전세계적으로 기독교 신앙 서적치고는 경이로울 만한 숫자인 1500 만부 이상이 팔려나가면서 많은 이들에게 유익을 준 책으로 자리매김을 한 책인 조쉬 맥도웰의 < 누가 예수를 종교라 하는가 (원제: More than a carpenter) >>는 아쉽게도 한국 교회에서는 크게 관심을 끌진 못했던 것 같다. 이 책은 일반 대중을 겨냥한 변증 입문서 정도에 해당하는 책이기 때문에, 술술 쉽게 읽히지만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그 어느 것도 결코 대충 읽어넘길 만한 것이 없을만큼 중요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이미 믿음을 가지고 있는 크리스천, 영적인 고민을 하며 진리에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길 원하는 영적 구도자, 심지어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회의적인 회의주의자, 무신론자들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기독교 신앙에 관한 정직한 의심, 의문점들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명쾌한 대답을 제시하고 있는 유익한 책이다. 이 글에서는 이 책의 각 장별로 요약과 함께 간략한 서평을 남기고자 한다.
– 1장: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
토마스 아퀴나스는 “모든 영혼 안에는 행복과 의미 있는 삶을 향한 목마름이 있다” 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행복과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1) 나는 누구인가? 2) 내 존재의 목적은 무엇인가? 3) 나는 어디를 향해 가는가?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 이 세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놓고 있다. 기독교 또한 성경 속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 속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물의 삶 속에서 이 세 질문에 대한 독창적인 대답을 내어놓고 있다. 저자들은 이 질문들에 대한 기독교의 대답이 과연 신빙성이 있는지, 진리인지를 이 책에서 탐구하고자 한다.
– 2장: 성육하신 하나님 –
2장에서는 이 땅에 성육신하신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신적 자의식과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식했던 유대인들에 대한 탐구를 한다. 예수님이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였다는 담대한 주장을 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한다. 사람들이 부처나 무하마드나 공자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보이지 않으면서 예수님에 대해서는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바로 예수님만이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과 같은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예수님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은 매우 배타적이며 편협하고 옹졸하게 보인다며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그를 따르는 많은 크리스천들을 핍박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던져야 할 정말 중요한 질문은 “예수님이 정말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는가?” 이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만약 ‘그렇다’라면 문제의 쟁점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의 주장은 참인가?” 이 될것이다. 신약성경을 얼핏 읽다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을 한번도 직접적으로 한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신약성경 여러 곳을 인용하며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명백하게 언급하셨다고 설명을 한다. 예를 들면:
1 )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요 5:18)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는 표현을 써서 언급하지만 예수님은 “나의 아버지”라는 좀 더 사적인 표현을 썼고, 또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는 말을 함으로써 자신의 행위와 하나님의 행위를 동등선상에 두었다.
2 )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 10:30)
이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하나’라는 단어는 본질 또는 속성에 있어서 하나임을 뜻하는 표현으로써, 유대인들이 이 말을 들었을 때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3 )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요 8:19) 4 )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요 12:45) 5 )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요 15:23) 6 )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요 5:23)
3 )-6 ) 모두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이야기 하셨음을 보여준다.
7 )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막 2:5)
여기서는 제 3자인 예수님이 죄 사함을 선포하는 일은 하나님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발언을 함으로써 예수님은 자신을 인간 이상의 존재로 생각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8 )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막 14:60-62)
이 본문에서 나오는 ‘인자’라는 표현은 다니엘서 7장 13-14절에 나온 표현을 예수님께서 인용한 것이며, 이 표현은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신성모독죄를 범했다며 분노했다는 기록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한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 3장: 당신은 예수를 누구라 하는가? –
2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했던 그 파격적인 주장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3장에서는 저자들이 예수님이 했던 이러한 주장이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여기서 옥스포드에서 가르쳤던 CS 루이스가 예수님에 대해서 했던 유명한 말이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준다:
– 사람들은 자주 예수에 관해서 어리석은 이야기들을 한다. 나는 그와 같은 일을 막으려고 이 자리에 서 있다. “예수를 위대한 도덕적 선생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그의 주장을 믿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결코 이렇게 말해서는 안된다. 단순히 인간에 지나지 않는 어떤 사람이 예수가 말한 것과 같은 말들을 했다면 그는 결코 위대한 도덕 선생이 될 수 없다. 그는 미치광이이거나 혹은 지옥의 악마일 것이다. 당신은 선택해야만 한다. 이 사람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미친 사람이거나 혹은 그보다 더 형편없는 사람일 것이다…. 당신은 그를 바보로 취급해서 입을 다물게 하거나, 그를 악마로 여겨 그에게 침을 뱉으며 죽일 수도 있다. 혹은 그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를 위대한 스승으로 추켜세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말자. 그는 우리에게 그런 여지를 남겨 두지 않았고, 그럴 의도도 없었다 –
CS 루이스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하여 삼자택일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그저 위대한 위인 중 한명정도로 취급하며 대충 대충 넘어갈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런 파격적인 주장을 한 예수님은 망상에 빠진 정신나간 미치광이이거나, 거짓말로 사람들을 선동하려는 악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정말로 진리만을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했던 주장들은 참이거나 거짓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 예수님의 주장이 거짓이라면 예수님은 거짓말을 했거나, 자신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그런 주장을 한 정신병자 정도일 것이다.
– 예수는 거짓말쟁이인가? – 예수님이 고의로 거짓말을 하여 사람들을 선동하려 했던 사람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몇가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의로 남들을 속인 사람이라면 그는 위선자이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위대한 스승으로 추앙받을 수 있는가? 2. 예수님이 그렇게 파격적인 거짓말을 했다면 어떻게 강한 편견이 있는 당시 사람들 앞에서 유례없는 선행과 도덕적으로 이대하고 숭고한 희생적인 삶을 살 수 있었는가?
– 예수는 정신병자인가? – 오늘날 우리 교회 청년이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나폴레옹이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한다면 그 청년은 분명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확실할 것이다.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했던 주장은 사실 이 청년이 나폴레옹이라고 주장하는 것 이상으로 파격적인 주장으로 유대인들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예수님에게서는 정신착란에 따르는 비정상적이고 불균형한 상태를 전혀 찾아볼 수 없음을 여러 권위있는 정신과전문의들이 성경의 기록을 근거로 진단, 결론 내렸다. 예수님은 심오한 말을 했고,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상을 설파했으며, 가는 곳마다 수 많은 군중들이 따를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감동시킨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정신병자였다는 생각은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생각이다. 예수님이 거짓말쟁이도 아니고 정신병자도 아니라면, 예수님이 했던 주장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예수님이 정말로 성육신하여 이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구도자들은 매우 진지하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에 대하여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이 땅에서의 여러분의 삶과 영생에 관하여 엄청난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 4장: 예수가 있다면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라? –
오늘날 인간의 지식에 있어서 과학이 가지는 권위는 거의 독보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라는 식의 말을 하며, 예수님의 신성이나 부활과 같은 문제들은 과학적이지 않기에 믿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할 수 없는 수 많은 사실들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인간의 존재 가장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는 근본적인 신념들은 과학적으로 증명 불가능 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과학적인 증명은 어떤 사실에 의문을 가진 사람 앞에서 가설을 세우고 반복적인 실험을 통하여 같은 결과를 도출해내는 과정을 통하여 그것이 사실인지 보여주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과학적 방법/증명이란 어떤 현상의 측정과 실험 혹은 반복되는 관찰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나는 2013년 5월 3일 점심으로 삼겹살을 먹었다’라는 주장을 어떻게 반복적인 실험을 통하여 증명해 낼 수 있겠는가? 이런 종류의 주장들은 성격상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해 낼 수 없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 날 고기집에서 계산한 영수증을 제시한다든지, cctv에 찍힌 고기를 먹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증거로 제출한다든지, 아니면 고기를 먹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는 목격자를 찾든지 해야하는 법적-역사적 증명의 범주에 속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런 방법은 법정 재판에서 이루어지는 방법과 동일한 방법이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도 마찬가지로 이런 법적-역사적 증명의 범주에 속하는 사실이라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그것은 과거에 단 한번만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이기에, 반복적인 실험과 관찰을 통하여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 5장: 신무신론의 도전 –
2001년 9/11 에 있었던 뉴욕에 있는 WTC 비행기 테러 사건을 기점으로 소위 ‘신무신론자’로 불리우는 4명의 인물들이 등장했는데 이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 리처드 도킨스 (God Delusion의 저자)
2. 크리스토퍼 히친스 ( God is Not Great의 저자)
3. 샘 해리스 (Letter to a Christian Nation의 저자
4. 데이얼 데닛 (Breaking the Spell의 저자)
이들은 각각 베스트 셀러 반열에 오른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한 자신의 책들을 통해 전세계적인 유명세를 탔고,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많은 신앙인들이 이들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 신앙을 저버리기도 했다. 저자들은 이런 신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은 니체, 프로이드, 마르크스, 러셀 등의 과거 무신론자들이 몇 세대 전에 했던 주장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지만, 신무신론자들만의 두드러지는 특징이 몇가지 있다고 말한다:
1. 신무신론주의는 진지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2. 과거의 무신론과 달리 신무신론자들에게는 종교적 믿음에 대한 관용이 없다. 그들은 종교는 악이라는 공식을 내세우며 모든 종교는 제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3. 신무신론자들은 특별히 기독교에 대해 악의에 찬 비난을 퍼붓는다.
또 신무신론자들이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것 중 하나는 종교는 맹신을 요구하며 오직 믿음에 기초한 반면에 무신론주의는 이성과 과학의 실증적 증거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상당히 순진한 주장이다. 특히 다윈의 진화론을 내세우며 초자연적인 존재가 불필요함을 주장하는 그들은 결정적인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이성이 맹목적이고 물질적인 다윈의 진화 과정을 통해 발달해 왔다면 우리는 도대체 왜 그것을 신뢰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만족스러운 대답을 무신론이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연한 과정의 산물인 인간의 두뇌가 우리로 하여금 그 세계를 이해하게 해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말인 것이다. 결국 무신론자들은 이렇게 비합리적인 자신들의 세계관 속에서 갇혀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성경적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발전해 가는 이 세상의 과학적 지식에게 아무런 지지를 얻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신무신론자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현대과학은 오히려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가리키는 많은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생물학에서 가장 큰 난제 중 하나는 생명의 기원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하나의 예로 들 수 있다.. 불과 몇 나노미터 크기의 작은 세포 안에 백과사전보다 더 많은 방대한 정보가 저장되어져 있는데, 무신론자들은 이렇게 복잡하고 방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세포가 어떻게 시작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아무런 대답을 내어놓지 못한다. 반면, 초자연적인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겐 섬세하게 디자인 된 생명의 경이로움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닐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우주의 미세조정 (fine-tuning)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우주에는 실제로 각각 완전하게 미세조정되어야하는 20여개의 보편 상수가 있는데 대부분은 경이로우리만큼 정교하게 조정되어져 있다. 20 여개의 이런 상수들이 각각 0.0000000000001% 만이라도 달랐더라면 생명은 고사하고 우주 전체가 붕괴되어버렸을 것이라는 사실은 모든 물리학자들이 만장일치로 동의하는 과학적 사실이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무신론자들은 내어놓을 수 있는 만족한 말한 설명이 없다. 하지만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이런 과학적 증거들을 대면하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온 우주를 정교하게 설계하시고 지으신 하나님의 대한 믿음을 더 견고하게 다질 수 있게 된다.
– 6장: 성경의 권위는 충분하다 –
이 장에서는 중요한 주제인 성경의 권위 혹은 성경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은 신적인 영감을 받아 기록된 무오한 기록일 뿐 아니라 개개인의 삶 전 영역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책이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역사적인 사실들을 기록한 책이라고 믿지만 대다수의 불신자들은 성경이 그저 전설이나 허무맹랑한 환타지 소설을 써놓은 책이라는 생각이 만연하다. 저자들은 많은 학자들의 말을 인용하며 성경의 기록들이 얼마나 신뢰할 만한 것들인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성경 사본들은 얼마나 정확하게 전승되어 왔는지, 얼마나 많은 사본들이 존재하는지 등을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설명한다. 이 작업의 결론은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현존하는 그 어떤 고문서들과 비교해봐도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사본들은 압도적으로 많으며, 신뢰할만하고, 또 정확하게 전승되어 왔다는 것이다.
고대시대에 성경사본을 필사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혹은 실수로 생긴 오류들을 가지고 트집잡는 바트 어만(Bart Ehrman)이나 비교적 최근에 발견된 도마, 유다, 빌립, 베드로, 마리아 복음서 등에 이미 정경으로 채택된지 오래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서들과 동등한 혹은 더 높은 권위를 부여하고자 하는 예수 세미나 (Jesus Seminar) 등의 문제점 등을 저자는 조목조목 비판하며 현재 우리가 정경으로 가지고 있는 성경의 권위가 충분함을 역설한다.
– 7장: 제자들의 삶과 죽음이 말하는 예수 –
6장에서 고대에 쓰여진 성경이 오늘날까지 신뢰할 수 있을만한 방법으로 전승되어 왔는지의 문제를 다루었다면 7장에서는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 그리고 성경속에 나오는 예수에 관한 증언들이 과연 신뢰할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 그 증언들이 거짓인지 신뢰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증언인지를 확인 하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제자들의 삶이 그들의 증언들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변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다.
예수의 제자들 중 거의 대부분은 부활하신 예수를 목격하고 예수를 메시아이자 살아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확신했고, 그 강한 확신 때문에 잔인한 방법을 죽임을 당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 빌립, 바돌로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심당원이었던 시몬은 모두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고,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마태는 칼로 죽임을 당했으며, 도마는 창에 찔려 죽었고, 다대오는 화살에 맞아 죽었다. 물론 이 시점에서 제자들이 모두 어떤 거짓말에 의해 속았거나 정신이 나갔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들이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거짓을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자들이 속은 것이 아니라 정말 부활하신 예수를 목격하고 확인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 할수 있을까? 그 답은 성경에 기록되어있다. 여러가지 측면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몇가지만 이야기하자면, 대부분의 제자들은 예수가 체포되었을 때 비겁하게 숨었으며,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도마와 같이 부활하신 예수의 상처에 손을 직접 넣어보기전에는 믿을 수 없다라고 했던 회의적이었지만 결국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했던 도마가 있는가 하면, 예수를 세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며 비겁하게 자신의 안위만을 꾀한 베드로도 예수부활을 목격하고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다. 또한 예수의 형제로 알려진 야고보는 평생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오히려 자신의 형제인 예수가 터무니없는 말로 사람들을 선동하러 다니면서 가족의 명예에 먹칠하고 있다며 수치스럽게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도 마찬가지로 예수의 부활을 목격했고,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활동하다가 돌로 맞아 순교하기에 이른다.
하룻밤 사이에 회의적이고, 비겁하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기 바빴던 제자들이 180도 급변하여 예수가 부활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는 사실이 진리임을 굳게 믿고 죽음까지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로 전파했음을 생각했을 때 그들의 증언이 얼마나 신뢰할만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 8장: 메시아를 오해한 유대인과 제자들 –
변증적 맥락에서 비교적 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8장에서는 예수의 제자들이 이해하고 있었던 메시아의 모습에 대한 설명이 간략하게 실려있다. 제자들 뿐 아니라 1세기 유대인들이 이해한 메시아는 유대민족을 로마제국의 정치적 억압에서 구원하고 이스라엘을 독립국가로 회복시킬 정치적 지도자를 이해했다. 자신들이 따르던 예수를 그런 메시아로 이해했기에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을 때에 그들은 절망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를 목격한 그들은 예수가 단순한 정치적인 해방을 가져다 줄 존재가 아니라 모든 인류를 영원한 죄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실 메시아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이 예수가 참된 메시아임을 죽기까지 확신에 찬 모습으로 증거하게 되는 결정적인 동기 부여를 하게 되었다.
– 9장: ‘정통 유대인 엘리트’가 만난 예수 –
사도 바울은 신약성경에서 단연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일 것이다. 그의 회심과 삶은 예수의 메시아 됨과 또 부활 사건에 대한 신빙성을 더해준다. 바울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 가말리엘의 제자로써 그 시대 최고의 학문을 접하고 섭렵한 엘리트였으며, 로마 시민권을 소지한 특권 계층이였고, 철저한 유대식 교육을 통해 자기 입으로 자신을 율법의 ‘의로는 힘이 없는자’라고 지칭할만큼 종교적인 사람이었다. 또한 예수를 만나 회심하기 전에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러 가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 전도자가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일에 제일 먼저 앞장섰던 당대 최고의 엘리트 바울이 극적인 체험을 통하여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확신하게 되어 삶이 완전히 뒤집어지게 된 이 사건은 신약성경에 기록된 수 많은 다른 증언들과 함께 예수에 관한 생생하고 일관성있으며 신뢰할만한 자료들을 제공한다.
– 10장: 예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
7-9장에서 다룬 것 처럼, 제자들이 부활했다고 믿었던 예수가 애초에 죽은 것이 아니였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혹은 예수가 죽은 것은 맞지만 시신은 도난 당했거나, 누군가에 의해 옮겨지거나 숨겨졌고 제자들과 사람들은 일종의 환상에 빠져서 헛것을 보고 예수가 부활했다는 망상에 빠진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10장에서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집중조명하여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능성들을 좀 더 면밀히 검토한다. 예수 세미나와 같은 예수의 신성을 거부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을 주축으로 부활이라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애초에 배제하고 예수의 죽음과, 빈 무덤, 다시 나타나여 보진 사건에 대한 여러가지 가설들이 제기 되었다. 저자들은 이 모든 가설들이 하나같이 대다수의 학자들이 사실(fact)로 받아들이는 여러가지 사건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설명한다.
– 11장: 구약의 모든 예언을 이룬 예수 –
예수 이 땅에 오시기 수백, 수천년전부터 기록된 구약 성경에는 메시아에 대한 수백 개의 예언들이 기록되어있다. 이 예언들은 태어날 장소와 시간이나 계보, 출생방식 같이 인간이 억지로 끼워맞출 수 없는 내용들도 허다하기에 예수가 성경이 가리키는 참된 메시아인지 확인 또는 검증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결론적으로 예수는 구약에서 언급된 모든 예언을 성취했다. 한 사람이 이 모든 예언 중 단 8개만이라도 성취할 수 있는 확률은 100,000,000,000,000,000 분의 1이며 이것은 우연의 이름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낮은 확률이다. 이것은 예수가 성취한 구약성경의 예언들은 우연일 수 없으며, 하나님의 영감으로써 기록된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 12장: 정녕 예수 말고 다른 길은 없는가 –
12장에서는 ‘왜 굳이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야 했는가?’라는 질문을 다룬다. 그것은 결국 죄와 구원, 공의로우시면서도 자비하시고 사랑이신 하나님의 성품사이에 나타는 딜레마로 귀결된다. 저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이루고자 했던 목적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왜 그런 극단적으로 보이는 방법을 선택하셔야 했는지를 설명한다.
– 13장: 예수가 나의 삶을 변화 시켰다 –
마지막장인 13장에서는 삶을 변화시키는 예수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인 간증이 담겨 있다. 쾌락에 빠져있었고 교만하기 짝이 없었던 저자가 예수를 영접한 후에 일어나기 시작한 삶의 변화에 대한 그의 간증은 간략하게 씌여져 있지만 마음에 감동을 주고 복음의 능력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