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란 도통 못 알아먹어야 하는 것이다.

요즘 김성수 목사님의 로마서 강해 설교를 들으며 예전에 깨닫지 못했던 성경의 심오함 속에 감추어진 놀라운 비밀들에 전율을 느끼고 있다. 참으로 강렬했지만 너무 은혜스러웠다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는 2012년 1월 22일 김성수 목사님의 주일 설교 중의 한 부분을 옮겨적어본다. 아마도 사람의 귀에 즐거운 설교를 추구하는 수많은 설교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다소 강한 어조로 열변을 토해내신 듯하다.

———————————————————————————————-

설교가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제가 노파심에서 한 말씀 드리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라는 측면에서의 이 설교는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어서는 안돼요. 성경은 분명 하나님의 택한 자들, “너희”와 “저희”로 나눈단 말이에요. 예수님이 직접. 하나님의 택한 자들, “너희”에게만 그 비밀을 열어두었다 그러죠. “저희”에게는 허락이 안됬다 그래요. 못 알아듣는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사야를 보내면서도, 말씀전에 그래놓고 귀,눈 막아라 그런거에요. “열어서 설득시켜” 그러지 않았어요.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이 귀가 머는거에요. 왜? 못알아들으니까. 그래서 “귀를 막아라” 그런거에요. “열어라”가 아니에요. 못 알아 들어야돼요. 하나님의 백성만 알아들어야돼요.

그런데 오늘날 인기있는 설교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건 인간 보편이 다 수긍하고 추구하고 선한 사람되기, 도덕과 윤리의 준수, 사회에 좋은 영향력 미치는 사람되기, 착한 일 많이 하기, 성도다운 사람되기, 마음 다스리기 등등. 모든 설교가 이런 적용으로 끝나자나요. 그건 좋은 것, 보편적 인간들이 합의한 좋은 것에 대한거죠. 그게 인기있는 설교에요. 그리고 “건강한” 설교라고 하잖아요. 그런 설교는 감동도 있고, 재미도 있고, 흥미도 있어요. 그래서 그런 설교를 한편 듣고 나면 결연한 결심도 하게되고, 의지의 불을 붙이기도 하고, 감동받아 눈물도 흘려요. 그런데 그런 설교를 절에가서 하면 거기 있는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예수 이야기만 쏙 빼고 똑같은 내용을 절에 가서 하면? 똑같이 감동 받습니다. 똑같이 눈물 흘립니다. 성경은 그것을 설교라고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목사님이 불교 대학원에 가서 설교를 하는데 스님들이 다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치는 일이 생기는 거에요. 성경은, 예수님은 못 알아듣는다고 그러는데 중들을 알아듣고 일어나서 기립박수 치면 누가 맞는 거냐구요.

여러분이 복음 전한다, 간증한다라고 하며 돌아다니면서 여러분이 예수 안믿는 사람들한테 얘기했을 때 그들이 감동받으면 여러분들은 가짜인거에요. 못 알아들어야되요. 그래서 어려운 것이 맞는거에요, 여러분. 그래서 작금의 기독교는 여러 종교 중에 하나가 되어서 그 종교들이 동일하게 추구하는 어떤 동일한 것, 그런 것을 가르치고 행하려고 하는 그냥 잡교가 된거죠.

설교는 묵시를 설명하고, 예수를 설명하고, 십자가와 은혜와 피를 설명하는 것이여야돼요. 그래야 세상이 못 알아들어요. 그래야 중들이 못 알아듣는다니까요? 절에가서 예수, 십자가, 피, 은혜 이런거 이야기 해보세요. 어떻게 그들이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칩니까? 그렇게 세상은 알아듣지 못하는 예수 이야기, 하나님 아들 이야기, 은혜 이야기, 그 안에 말씀이 들어있는 자, 아들을 받은자, 그들만 이해해요.

제가 지금 한국말로 설교하는데 여러분들이 이해하죠. 그건 여러분들 안에 한국말이 있기 때문에 그런거에요. 제가 헬라어나 히브리어로 설교해보세요, 할 수도 없지만. 못 알아듣죠? 여러분안에 그 말이 없어서 그래요. 마찬가지로 아들이 있는 자는 아들을 이야기하면 알아들어요. 그런데 그게 없으니까, 말씀이 내 안에 없으니까 못 알아듣는거에요. 그리고 어렵다 그러는거에요. 그리고 중들이 하는 설법 같은 것, 마음을 잘 다스리고, 평상심을 유지하고,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훌륭한 사람이 되세요 그러면 다 알아들어요. 설교 아니니까.

그렇게 이 아들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 설교가 떨어지면 어렵고 지루하고 생경하죠. 그런 사람들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이렇게 외칠거에요. “세상살이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줘. 어떻게 살아야 가치와 보람을 챙길 수 있고, 어떻게 살아야 향기가 되어 이 세상에 유익한 영향을 끼치는 삶을 사는건지, 어떻게 살아야 선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조금이라도 환난을 조금피해서 살 수 있는지 그런 말좀 해줘.” 속으로 그런다고요. 중들도 할 수 있는 거.

그러려면 가까운 절에 가세요. 거기가면 옛날 고전 같은 것을 예로 들어서 더 깊이, 훌륭하게 설법해주니까 가까운 절에 가시래니까요? 설교는 보이지 않는 묵시, 보이지 않는 무한의 하나님을 설명하여 삶으로 입으로 이웃에게 넘겨주는 것이에요. 그걸 사랑이라고 그래요. 사랑의 전의. 그러니까 그렇게 어렵다고만 하지 마시고, 내가 과연 말씀을 받은 사람인지를 고민해보시란 말이에요.

————————————————————————————————-

이 복(福)에 환장한…

412701_104210_03441119_2291_5041

예전에 “휴암”이라는 불교에 이판에 속하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불교에는 이판과 사판이 있는데요, 이판은 불교의 불경을(말씀) 열심히 연구하는 그런 종류의 스님들이고 사판은 삶이나 아니면 행정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런 승녀들입니다. 근데 둘이 서로가 자기들이 옮다라고 너무 머리 터지게 싸우기 때문에 “이판사판”이란 말이 나온것입니다. 그 이판중에 불교 철학을 공부한… 그러니까 불교인들 중에서도 불교계혁 주위자인 휴암이라는 사람이 “한국 불교의 새얼굴”이라는 책에다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이 복에 환장한 불교인들아” 제목이 그거에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 복에 환장한 불교인들아
너희들의 스승은 진리를 찾겠다고 그 왕좌의 자리와 그 왕궁을 버리고 고난을 감수하며
수난의 길을 걸어, 수도정진의 길을 걸어 진리를 발견했는데
도대체 너희는 그 스승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 스승앞에서 너희는 무엇을 구하고 있느냐?
너희는 그 스승이 버린것을 그 스승의 이름을 부르면서 구하고 있구나.
이 복에 환장한 불교인들아.
내 조국 대한민국에 불교인들의 수가 1,300만명이라고 하는데 이 1,300만명이 130명으로 줄어든다 할지라도 이 불교를 좀 먹고 있는 이 기복주위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이 복에 환장한 불교인들아. 내 조국 대한민국에 과연 불교가 존재하는가?

이런 류의 글이였습니다.
전 그 글을 읽으면서 누군가 오늘날 기독교에 이런 일각을 해주여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렇잖아요. 예수를 맏는다고 하면서, 밥숱가락에다가, 방석에다가, 대문짝에다가, 어디 안써논데가 없어요.. 심지어 복씨도 있어요. 한국엔.

“이 복에 환장한 기독교인들아.
너를 구원한 예수는 너를 죄에서 건지겠다고 하늘 보좌를 버리고, 하늘 왕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와
가장 낮은 짐슴의 밥통에 와서 이 세상 그 누구도 갈 수 없는 수난의 길을 통과하며
결국 가장 처참한 저주의 자리인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말미암아 너희들을 죄에서 건졌는데,
도대체 너희는 그 십자가에서 피를 여전히 뚝뚝 흘리고 있는 
그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서 도대체 무엇을 구하고 있느냐?

이 복에 환장한 기독교인들아
내 조국 대한민국에 기독교인이 1,000만명이라고하는데 그 1,000만명이 100명으로 줄어진다 할지라도 이 기독교를 왜곡되게 만들고 있는 이 기복주의는 반드시 깨져야 한다.
이 복에 환장한 기독교인들아.내 조국 대한민국에 과연 기독교가 존제하는가?”

누군가 이런 일갈을 해줘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한것에는..
기독교가 고작 그런 복받는 종교입니까? 기독교는 복을 추구하는 종교가 맞아요.
그러나 그 복은 하늘의 복(바라크)입니다. 하늘의 생명력이요, 하늘의 풍요이지 여러분의 소원이나 야망을 충족시켜 주는게 기독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꿈과 비젼과 야망이 하나님의 꿈과 비젼과 야망과 계획 앞에서 굴복되어 지는걸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여러분의 삶에서 펄쳐지게 하는게 기독교지 하나님을 방법과 수단과 도구로 사용하여 여러분의 꿈을 여러분의 뜻을 이루는게 기독교가아니란 말입니다. 그건 마귀가 만들어논 가짜 입니다.
———————————————————————————————
2011 북가주 청년연합집회에서 강의한
남가주 서머나 교회 김성수 목사 설교중에서 발취…